B급 정서, 글로벌 시장의 패권을 잡다
2017-01-23김묘환 CMG 대표 
히피문화에서 일본발 놈코어까지
문화일반론은 하위문화(subculture)가 주류문화(main culture)에 의해 구축된다고 말한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갖는 공통의 생활방식이라는 문화의 본질보다는 소수 계층에 의한 감상이나 향유, 혹은 제한적 교환 경제의 대상이던 르네상스 이후의 서구적 관점의 문화론이 바로 그것이다.

이같은 문화일반론이 현대사회에 들어 쇠퇴하면서 이제는 다양한 계층으로 확산된 문화 수용자들이 급격한 사회의 진보와 더불어 점차 하위문화가 주류문화를 구축하는 현상들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이런 현상들은 전후 베이비붐 세대들이 성장하여 사회적 주체가 되면서부터 기성 세대의 대량복제 생산 문화에 반하는 저항문화처럼 다양하게 분화되면서 발전해 왔다.

1960년대 들어 미국 등 서구에서는 베트남전을 전후해 반전, 반핵, 평화 등 이상향적인 구호를 외치는 젊은층이 등장했다. 하지만 기성세대의 눈에는 일탈, 퇴폐, 향락으로 비추어지면서 해결할 수 없는 세대간 갈등으로 남게 된다.

이러한 갈등이 낳은 대표적인 문화현상이 히피였다. 히피문화는 당시만 해도 제3세계라 칭하던 아프리카나 중남미 문화와 결합하면서 다양한 파생 문화를 확산시켰다. 여기서 파생된 새로운 길거리 하위문화를 스트리트 문화라고도 하고 힙합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이 문화가 글로벌한 주류문화로 구축하는 데는 불과 20 여 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모즈 룩의 대명사 비틀즈


◇ 히피들이 일으킨 산업, 아웃도어


히피가 태어날 당시는 비틀즈나 롤링스톤즈를 비롯한 영국 뮤지션들에 의한 브릿팝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던 시기였다. 클래식이라는 상위문화를 바탕으로 구축된 비틀즈의 브릿팝은 그 영향력이 전세계에 미쳤음에도 파생 효과가 기껏 모즈 룩 정도로 그쳤다.


하지만 히피는 뚜렷한 스타 하나 없이도, 물론 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 같은 이도 있긴 하지만 다수의 하위문화가 주류를 구축하다 보니 다양한 파생효과가 지금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상위문화라 할 수 있던 비틀즈조차도 후반기엔 구성원 전체가 히피룩을 추종하고 아예 히피처럼 살다 간 존 레논 같은 이도 있었으니 대표적으로 하위문화가 상위를 구축한 실례로 적합할 것이다.


‘아! 이것도?’ 하겠지만 수년간 한국 패션시장에 불을 지폈던 아웃도어의 붐도 유럽 귀족들의 우아한 피크닉과 사냥 놀음에서 출발한 것으로 이른바 아래 것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고산 등반으로 확산된 것이 유럽의 아웃도어다.


세계시장의 절대 강자인 미국 아웃도어 시장은 주로 백패킹으로 표현되는데 우월성 경쟁 놀음인 고산 등반이 아니라 아무데서나 쓰러져 잠잘 수 있던 히피들이 자유롭고 또 친환경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데서 탄생한 것이다. 이 백패킹이 분화되면서 캠핑과 투어 바이크, 산과 바다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즐기는 보드 플레이로 확산됐고 세계 최대 규모의 넘사벽 아웃도어 시장을 굳건히 유지할 수 있게 됐으니 패션 분야에서도 하위문화가 주류를 구축한 사례는 얼마든지 이해하고도 남을 수 있다고 본다.

◇ 세계를 수용하기 시작한 일본

다시 현재로 돌아와 보자. 최근 국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일본 하위문화의 일반화 현상과 관련해 기성세대는 우려와 함께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 세대의 이중성을 공격하는 하나의 도구로 거론하고 있다. 실제 이 시대의 젊은 층들은 위안부 문제나 소녀상 설치 혹은 독도 같은 첨예하게 대립된 문제에 있어서는 국가간에 발생하는 외교적 문제나 주변국과의 실리적 판단 그리고 여기서 야기되는 파급효과 같은 건 안중에도 없이 일본과 일본인들을 공격하는 자극적 언행을 실천하고 혹은 동조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누리고 있는 삶 자체는 일본의 영향력에 깊게 빠져있는 이중적 행태를 보인다. 대학가를 비롯 젊은이들의 주 동선에 즐비한 일본어 간판과 함께 확산되고 있는 일본 식문화만 봐도 그렇고, K팝이니 한류니 하고 있지만 한국의 대중 연예인들이 입고 등장하는 옷들은 일본 브랜드이거나 일본을 통해서 국내에 유입되고 있는 브랜드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헤어스타일이나 메이크업 같은 행위도 일본 미디어의 영향력 하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행위를 국내 청소년들이 맹목적으로 따라 한다는 사실만 봐도 기성세대의 비판은 언뜻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이 현상을 그렇게 단순하게만 봐서 이해될 문제는 분명 아니다. 그 이유는 문화현상이란 단순하게 정치, 경제, 사회적 팩트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일본은 2015년 기준으로 약 1430억달러(약 168조원) 규모를 자랑하는 패션 시장이다. 수년 전에 일본 섬유류 수입 협회 JTIA가 ‘일본 수입 의류 시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일본 패션시장의 성장 과정과 이에 따르는 특성에 대해 언급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대 일본 소비자들은 사치품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 소비자들은 유럽의 패션 제품이 일본 제품보다 훨씬 높은 품질과 내구성을 가지고 있다고 강하게 믿었다. 유럽의 럭셔리 브랜드에 대한 사회적 혹은 정서적인 애착으로까지 발전하는 현상으로 일본 소비자들에게 유럽 브랜드의 아이템을 소유하는 것은 경제적 성공과 사회적 수용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붐을 이룬 일본의 거대한 사치품 시장은 상류층 소비자들뿐 아니라 중산층 소비자들까지 확대되어서 나타났는데 어느 정도였냐 하면, 일본 중산층 소비자들은 유럽 디자이너 의류와 핸드백을 사기 위해서 가계의 다른 비용을 절약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이런 현상이 유럽의 조그만 수공품 상점이던 ‘구찌’와 ‘루이비통’을 오늘의 자리에 있게 만든 일등 공신이라는 사실을 그들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 럭셔리 시장은 ‘잃어버린 20년’의 시발점이 된 1990년대 들어 위축되기 시작했고, 2007~2008 년의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해 급격히 쇠락하며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패션시장의 놀라운 변화를 이끌었다. 장기간의 경제 침체는 소비자 지출을 줄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 소비자 태도와 행동을 대폭 변화 시켰다. 유럽중심의 럭셔리 브랜드에 사로 잡혀 있었던 대부분의 일본 소비자들은 스타일이 있으면서도 보다 합리적인 브랜드로 이동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패스트패션을 내세운 리테일형 브랜드들이 새롭게 일본에서 성공을 거두게 됐다. 고가의 럭셔리 브랜드 의존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일본 소비자들은 옷 입는 방법에 대해 훨씬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브랜드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증명하는 데 더이상 집착하지도 않게 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일본은 경제대국이 되고 나서 한참 지난 후에야 비로소 세계를 수용하게 된 계기가 물질의 잉여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비자의 변화’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는 점에 주목을 해야 한다.


그웬 스테파니의 ‘하라주쿠 걸’

◇ 세계를 장악한 일본풍, 놈코어

세계 패션인들에게 일본은 유별난 패션의 나라로 인식되었다. 요즘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가수, 작곡가, 프로듀서, 패션 디자이너, 걸 크러쉬 등등 그야말로 다양한 수식어가 붙은 알파걸의 대명사 그웬 스테파니의 히트곡인 하라주쿠 걸에 소개된 하라주쿠 스타일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이외에도 1980년대 이후 일본 패션계는 다양한 트렌드를 배출했다.

다른 패션 스타일로는 시부야 109에서 확산시킨 고갸루(高ギャル), 록 및 펑크 스타일의 영향을 받은 비주얼 케이(ヴィジュアル系), 내추럴 룩의 새로운 해석인 모리케이(森系), 고딕, 스위트 펑크, 로리타 스타일이나 1950년대 로커와 같은 드레스 룩인 록커빌리, 귀여운 액세서리와 밝은 색상을 강조하는 캐주얼 스타일인 데코라 등 수많은 일본발 트렌드가 세계시장으로 발신됐다. 하지만 이렇게 언급된 대부분의 일본 스타일 트렌드는 그저 특이한 B급 일본 캐릭터였고 그저 그런 패션계의 가십처럼 지나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글로벌 패션계를 뒤흔든 일본발 쓰나미는 위에 언급된 대부분의 여성 트렌드가 아닌 일본 남성 라이프스타일에서 불어오게 된다.

1980년대 프랑스 파리 프레타포르테 중심의 패션 시장이 전성기에 들어선 이후 오랫동안 패션의 본질은 ‘남들과 다른 것’ 혹은 ‘구분되는 것’이라 생각해 왔다. 그러다 보니 패션 광대처럼 보여주기 위해서 혹은 튀기 위한 것을 패션의 전부인 것처럼 다루기 시작하면서 패션은 시장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그들만의 리그를 치르게 되고 급기야는 범용품(Commodity)에 의해 주변으로 밀려나는 신세가 된다.

이렇게 패션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점에 세상은 디지털에 의해서 모든 것이 바뀌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때 등장한 글로벌 트렌드가 놈코어였다. 지극히 평범함을 추구하는 스타일을 의미하는 놈코어는 뉴욕의 트렌드 제안 회사인 케이홀이 2013년 10월 자신들의 리포트인 ‘젊은층 유행:자유에 대한 보고서(Youth Mode: A report on Freedom)’에서 주요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로 제안하면서 패션뿐만 아니라 소비재 시장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기존의 트렌드와 크게 구별되는 것은 패션 트렌드이면서도 특정한 복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삶의 방식 혹은 태도를 가리킨다는 것이었다. 놈코어는 지난 2014년 2월 미국 뉴욕의 한 매거진이 컨템포러리 라이프스타일 용어를 규정하면서 설명한 활동적인 베이식(Acting Basic)과 조화를 이루면서 전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스타일 자체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지만 용어가 뉴욕에서부터 시작되어 퍼져나갔다는 의미다.

‘놈코어’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스티브 잡스다. 오랜 시간 기득권자들이 형성해놓은 주류문화인 격식있는 옷차림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좀 더 가치 있는 의사 결정에 집중하는 글로벌 리더들의 모습이 놈코어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저 평범함을 표현한다고 놈코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 그리고 그들 중에서 트렌드 추종이 아닌 자기 스타일을 지닌 사람이 놈코어 스타일러라 할 수 있다. 애플에서 무엇보다도 디자인을 중시하던 스티브 잡스가 오랜 시간 한 가지 스타일만 고집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한결같이 입어온 검정색 터틀넥은 사실 일본의 유명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의 옷이고 청바지는 ‘리바이스’의 501, 운동화는 ‘뉴발란스’의 992모델 이었다.

잡스는 1980년대 초 소니가 지금의 애플과 같은 대우를 받던 시절 일본을 방문해서 소니를 견학했다. 그는 아키오 모리타 소니 회장에게 회사의 모든 직원이 왜 유니폼을 입고 있는지 물었다. 모리타 회장은 전쟁이 패한 후 일본 국민 어느 누구도 매일 옷을 갈아 입을 수 없었고 이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선 회사에서 유니폼을 제공해 주는 것만이 당시 일본의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획일적으로 입기 시작한 유니폼이 특히 소니와 같은 회사에서는 회사의 상징처럼 자리잡았고 직원들을 회사에 결속시키는 방법이 됐다.

잡스는 애플에도 소니와 같은 유형의 유대감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모리타 회장에게 소니 유니폼을 디자인 했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를 소개 받아 애플사의 유니폼 제작을 의뢰했지만 실행에는 옮기지 못했다. 하지만 이때의 인연으로 친분이 쌓이게 된 이세이 미야케와 잡스는 애플의 디자인 개발 협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여기서 잡스는 자신이 좋아하는 블랙 컬러의 터틀넥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요청을 받은 이세이 미야케는 단지 몇 벌의 셔츠가 아니라 무려 100장의 셔츠를 제작해 주었고 이 덕분으로 잡스는 평생 블랙 칼라의 터틀넥 셔츠를 입게 됐다고 회고한 바 있다. 중요한 건 놈코어가 세상에 떠오르기 전인 2011년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라는 부분과 단지 일본 디자이너의 옷을 입었다는 것만으로 일본발 놈코어를 말 할 수 있느냐일 것이다.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사람만 더 거론 하자. 페이스북의 주커버그와 알리바바의 마윈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그들은 스티브 잡스의 추종자라고 할 만큼 그 라이프스타일을 따라하고 있다. 그럼 그들이 일본 브랜드를 소비하고 있을까?

당연히 영향을 받았다. 일본의 패션은 지금 지구상 어느 곳보다 아방가르드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미국 아이비리그 따라하기에서 출발한 트렌드를 발전시켜 자체적으로 소화시킨 아메카지, 시부카지와 같은 캐주얼, 1990년대 우라하라족들이 확산시킨 고전적인 스타일의 정교한 비꼼과 같은 유머러스, ‘슈퍼드라이’나 ‘지스타로우’ 같은 워크웨어나 ‘스투시’ ‘슈프림’같은 스트리트 브랜드 확산에 영향을 미친 일본의 데님이나 화섬 신소재들의 우수한 품질은 놈코어가 추구하는 활동적인 베이식과 동의어로서 일본의 브랜드들이 글로벌 남성 패션을 장악하기 시작한 기초를 제공했다.

최근 글로벌 마켓에서 주목하는 일본의 대표 브랜드들인 ‘빔스 플러스’ ‘꼼데가르송’ ‘에드윈’ ‘저널 스탠다드’ ‘네이버후드’ ‘오슬로’ ‘레미 릴리프’ ‘언더커버’ ‘비즈빔’ ‘화이트 마운티어링’ 등이 놈코어 현상에 편승해 글로벌 시장의 남성들을 매료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부러움과 함께 감탄한다. 분명 B급이었던 그들이 주류를 구축해 버린 엄연한 현실을.

스티브 잡스 고유의 스타일은 놈코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