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전환? 통상임금? 최저임금…“나, 지금 떨고 있니?”
2017-09-15이채연 기자 leecy@fi.co.kr



성인 캐주얼 ‘지센’ 등을 전개하고 있는 위비스(대표 도상현)는 최근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플라잉타이거’ 매장 근무자 26명의 정규직화를 결정했다. 인력파견회사로부터 용역 형태로 수급한 매장 근무자들을 4대 보험 적용에 퇴직금을 주는 정직원으로 전환한 것. 오너의 결단이 내려지고 법무팀 검토 등 시행절차가 빠르게 진행돼 파견회사와 계약파기 패널티 조율만 남아있다.

주력 브랜드 매장만 270개에 이르는 회사가 고작 2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일이 대수롭지 않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 인상과 정규직화 이슈가 크고 고용안정 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다. 기업 간 혹은 기업과 개인 간 ‘갑질’을 제재하는 법제도 개편 역시 급 물살을 타고 있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높이는 판매사원 정규직화가 해당 기업에게는 물론 패션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올 2월에는 패션업계의 고용 시스템을 뒤흔들만한 판결도 나왔다. 대법원은 핸드백 ‘러브캣’으로 유명한 발렌타인의 백화점 중간관리자(매니저)로 일했던 2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퇴직금 및 수당 지급 소송에서 직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회사와 계약을 맺고 매일 일정 시간의 근로를 제공했으며 무엇보다 회사의 영업 방침과 지시에 따라 매장을 운영했으니 중간관리자도 정직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다.

백화점 영업을 하고 있는 패션기업의 경영자라면 이 판결을 수긍할 수 있을까.

패션기업들은 통상 백화점 매장을 ‘중간관리제’로 운영하면서 매장 관리자를 ‘소사장’으로 대했다. 중간관리자는 사업자등록을 내고 판매총액의 평균 15%를 수수료로 받아 직원급여와 고정비에 쓰며 매장 운영을 책임진다. 매출이 높을수록 중간관리자의 수익도 커지기 때문에 롯데백화점 본점처럼 대형점포에서는 매니저 중 억대 연봉자도 적지 않았고 월급쟁이를 자처하는 일도 없었다. 본사가 ‘중간관리자는 자기 사업을 하는 것’이라고 항변할만한 명분이다. 하지만 매일의 마감상황을 보고받고, 근무일을 지정하며, 매출 수준이 낮아 근무를 기피하는 외곽점포는 일정수준의 급여를 보장도 해준 모순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

중간관리자 정직원 인정 판결 이후, 패션기업들은 후과를 치르는 중이다.

골프웨어와 캐주얼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는 A사. 이 곳은 조만간 근무 연차 4~5년의 퇴직자들과 법정에서 만나게 됐다. 소송의 쟁점은 앞서의 사례와 동일하다. 이 회사 관계자는 “회사를 떠났다고는 하지만 한때 한솥밥 먹던 식구들과의 분쟁은 난감하다. 브랜드 마다 노무사를 끼고 10~20명씩 소송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고 걱정했다.

아웃도어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는 B사는 올 상반기 조용히 2~3%씩 중간관리 수수료를 인상했다. 최고 활황기에도 없던 파격적 수수료율 인상의 배경을 유추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백화점 매출이 전성기 대비 월 수천만원까지 빠져 수입이 줄어든 중간관리자들이 직영 전환을 요구하기 전에 나름의 대책을 강구한 것이다.

다 브랜드를 전개해 백화점 중간관리자만 백여 명인 여성복 전문기업 C사는 올 여름 비공개로 정규직 희망자 조사를 했는데 천만다행(?)으로 희망자가 예상보다 적어 한숨을 돌렸다. 이 회사 관계자는 “최대한 유리하게 상황을 이용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수입만 유지되면 회사에 묶일 이유가 없으니 수수료 인상 선에서 문제삼지 않겠다고 하더라”고 토로했다. 

지난달 31일에는 패션기업 경영자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판결이 나왔다.

기아자동차와 노조원 간 상여금 및 식대 통상임금 인정 소송이다. 이 판결로 기아자동차가 직원들에게 추가 지급해야 할 돈은 이자를 포함해 4223억원, 기아차 측에서 추산하는 인건비 추가 부담액은 1조원 이상이다.

이제 1심이 끝났고 법원이 해당 기업의 경영상태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소송 결과가 다르게 나오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자동차, 전자 등의 산업군에 비해 이익률이 매우 떨어지는 섬유제조업은 중간관리자 정규직 인정에 통상임금까지 적용하게 되면 인건비 부담으로 존폐의 기로에 설 수도 있다. 통상임금을 기초로 한 인건비 추가 부담액은 제조업 평균 기존의 연간 2.5배.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주력 유통인 기업의 경우 중간관리자 정규직화까지 더해지면 유지가 어려운 수준의 경영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패션기업 경영자들 사이에서는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반영된다면 최저임금에도 상여금과 수당을 포함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3년 후 맞게 되는 최저임금 1만원 시대가 미칠 영향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당장은 패션기업 본사 기준 최저임금 1만원을 충족하는 수준의 연봉을 적용하고 있어 큰 탈이 없어 보인다.

캐주얼 기업 D사 대표는 “문제는 소규모 공장, 임가공 협력사 등이 오른 인건비를 이겨내지 못하는 경우인데 패션기업이 대비할 수도 없다.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 수준에 맞춰 임가공비를 인상하면 생산원가와 소비자가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아 가격저항, 판매부진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까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패션업계의 고용구조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절차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노사가 각각 손해를 감수한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방향을 고민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