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패션산업 어떤 변화에 직면할까?
2008-01-28 김묘환 ㈜CMG 대표이사
한국패션산업의 패러다임 전환 위한 방향성 모색
1977년 반도패션의 「조다쉬」와 삼성물산의 「맥그리거」라는 라이선스 브랜드의 출범을 현대적인 패션산업의 출발이라고 본다면 한국패션산업은 30년 주기의 완전한 산업사이클을 한번 돌았다고 할 수 있다. 이웃한 일본이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과 유럽국가들의 라이선스 비즈니스 도입부터 현대적 패션산업이 시작된 것처럼 약 15년의 시간 차를 두고 한국의 패션산업도 라이선스 브랜드로부터 태동했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1970년대 외국 기성복 메이커들과 본격적인 기술제휴를 시작으로 도레이, 데이진, 가네보 같은 섬유회사들이 질을 높이기 시작하면서 일본의 의류산업에 대한 직접 변화를 가져다 준 것처럼 한국의 패션산업도 우수한 섬유기술과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1980년대 후반 이후 고도 성장의 길을 열게 됐다.
이런 산업의 역사 속에서 국내 패션산업은 1984년, 1991년, 1997년, 2003년을 시작으로 하는 네 번의 커다란 침체기가 6년 내지 7년 주기로 있었고 이러한 주기 속에서 나름대로의 성장을 거듭해 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003년 시작된 침체기의 모습은 5년이 지금 지금까지 이어지는 전형적인 산업쇠퇴기 국면을 보이고 있고 쇠퇴기가 길어지면서 제2차 산업 성장에 대한 준비는 엄두도 못 낼 현실에 직면해 있다.
우리와 비슷한 성장패턴을 지닌 선진국가 이웃 일본의 패션산업이 한 사이클 회전 이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한 학습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본다.
최근 몇 년간 양적 팽창으로 브랜드를 평가하는 시대의 종언에 대해서 끊임없는 워닝을 일방적으로 읍조렸는데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제로섬의 구조 속에서 독자생존이 가능하다고 믿는 일부 업계의 인식은 위태롭게만 보인다.
그림1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일반적 산업경기곡선상 우리 업계는 1997년 IMF관리체제를 기점으로 명백
한 쇠퇴기 시장에 접어 들었다고 본다. 하지만 이기간 동안 우리 업계는 이지 캐주얼군이라 부르는 일단의 브랜드들이 양적 팽창을 주도하면서 다음 산업주기에 대한 준비기간에 오히려 비효율적으로 비대해 져버리면서 물리학적 용어로 무질서한 에너지인 엔트로피가 과량 발생하면서 시장의 왜곡이 발생한다.
이후 여러 차례 새로운 시장에 대한 모색이 있었지만 산업의 통로에 대한 접근이 아닌 포지션 이동에 대한 접근 노력밖에 없었다고 본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각 기업들의 내부에 그림 2. 엔트로피 악순환에서 보이는 현상이 기업내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는 점으로도 쉽게 증명이 될 것으로 본다.
이런 배경 속에서 우리 산업 주변의 환경변화를 요약한다면 <그림3. 국내패션산업의 주변환경>과 같을 것이다.
위의 그림에서 요약된 내용들이 현재 우리 패션산업이 처한 환경이라는데 이의를 가질 사람들은 없다고 본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과거 우리가 30년간 처해온 환경과는 매우 다른 모습으로 급박하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어디에서부터…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간결한 상황표현을 한다. 하지만 패러다임의 변화는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될까? 물론 정답은 시장(마켓플레이스)에서 라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문제는 변화하는 패러다임의 수용 자세 일 것이다.
즉 수동적 자세, 능동적 자세, 혹은 적극적인 견인자로서의 새 패러다임을 수용할 것인가의 차이가 앞으로 국내 패션산업의 2기를 결정 지을 것이다. 이미 1962년 패러다임이란 말이 처음 만들어질 때 토마스 쿤은 ‘하나의 패러다임이 생성된 이후에도 이 패러다임은 항상 생성겧像?쇠퇴겢允섧풔?과정을 되풀이한다’라고 정의를 내린바 있다. 이 패러다임의 변화가 경제학적 관점의 역사라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과거, 현재, 미래가 대화를 하거나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역사가 시공을 거슬러 다른 곳에서 반복 혹은 진화하는 것처럼 경계면의 변화인 패러다임도 시공을 달리한 어느 곳에서인가 분명히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일본패션산업계가 수용한 새로운 패러다임은?
주지한 것처럼 1987년 일본에 소위 대점법(大型店鋪管理法案)이 시행 되면서 일본의 패션 산업은 심각한 패러다임 변화에 돌입하기 시작한다. 이후 1989년 지금의 일왕이 즉위하면서 시작된 허미세이(平成) 버블기에 일본의 국민들은 내수 산업이 황폐해 질 정도로 엔화의 위력을 해외에서 발휘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행태는 오래가지 못해서 일본경기의 침체와 ‘헤이세이 데프레’라는 장기 침체 국면을 불러왔다. 이기간 동안 일본기업은 수익감소로 고용, 소득 환경이 악화되었고, 마치 인계철선이 연동 된 것처럼 소비자심리는 완전히 얼어붙은 채 도저히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이것이 개인소비와 주택건설 투자에 악영향을 미쳤고, 더욱이 주가와 엔화 가치는 급등락을 거듭한 상황이 지난 90년대 초반부터 시작해서 2000년대 초반까지 십여 년간에 걸쳐 진행됐었다.
이시기엔 정치적으로도 전후 처음으로 집권세력인 자민당이 선거에 패배하면서 진보적 성향의 호소가와 정부가 들어섰고, 금융개선관련법안과 같은 당면 법안 처리의 지체와 부실 채권 처리의 지연으로 인한 은행대출기피현상, 각종 국내외 환경 악화 등으로 휘청거리면서 일본 경제는 무려 15년간의 불황의 터널을 지나게 되는데 바로 이 시기와 유사한 시기가 우리 앞에 펼쳐지기 시작할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 패션산업의 지난 노정이 사지선다형의 정답이 될 수 없겠지만 적어도 훌륭한 서술적 참고서 역할은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일본 패션산업계가 수용한 패러다임의 전환 국면은 전통적인 3사 비즈니스의 틀을 깨고 미국에서 시작된 SPA에 대한 적극적 수용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일본 패션업계가 간절히 요구한 SPA는 ‘각 유통 단계별 로스를 최소화하여 재고 로스를 포함한 모든 로스를 배제하고 영업효율과 자산효율을 개선하여 궁극적으로 CF의 증대를 꾀하는 것’이었다.
월드사가 지금의 데라이히데조우 사장이 사업부장이었던 「오조크(OZOC)」를 시작으로 SPA형 기업으로 전환을 시작한 1994년을 기점으로 일본 패션업계가 당면하고 있던 문제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기존유통시장의 급격한 변화, 불안정한 경기 상황의 지속
▷소매 대리점의 몰락, 백화점 영향력의 급격한 감소,
▷급격한 고령화로 경제력 보유 소비자 감소
▷지역 분화, 도시계획법등 관련법규 개정,
▷카테고리 킬러의 급속한 부상등 유통환경 변화
▷특별용도지구 폐지, 2종 점포인 패션전문빌딩 시대 등장, 유통 대 경쟁시대 돌입.
▷지역재개발 촉진- 하라주쿠, 다이칸야마, 텐진 등
▷지구온난화 가속화로 일기불순 지속 기존 상품기획 실패 속출
▷GAP, Zara, A.P.C 등 외자계(外資系) SPA의 침투,
▷소비자 라이프 스타일의 급격한 분화, 획일적 라이프 스타일의 몰락 다양성 추구
이러한 환경의 변화 속에서 월드, 파이브 폭스 등의 선도 기업들이 주도한 일본 SPA는 초기에 제조계 SPA와 리테일계 SPA라는 단순한 형태에서 출발 하였지만 십오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서 최근에는 다음과 같은 다섯 유형으로 분화 되면서 보다 전문화의 길을 걷는다.
▷Maker 계 SPA : Five Fox / Sanei Int’l /Flandre / Nice Claup / World ▷Retail 계 SPA : MUJI / Crayon / Uniqro / Sazaby / Moku Moku ▷Select 계 SPA : Ships / BEAMS / United Arrows ▷외자계 SPA : Indytex ZARA, GAP, Mango, BCBG, Talbot, Eddie Bauer ▷섬유 , 종합상사계 SPA : Itochu, Seiren
월드사가 SPA로 간다고 선언한 1994년과 8년이 흐른 2002년의 일본 패션 업계의 판도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자료가 그림4. 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소위 일본의 대수기업(大手企業)이었던 레나운, 온워드 카시야마 같은 업계의 절대 강자들이 월드 파이브폭스 등 적극적 SPA수용 기업들에 의해 순위가 밀려나 버린 상황이 위의 자료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국내 패션산업이 쇠퇴기에 돌입한다는 우려가 시작된 2000년대 초반 대기업을 중심으로 일본 SPA기업들에 대한 학습이 일차적으로 이루어 진 시절이 있었다. 당시 기업들의 관심이 현재 국내 패러다임 변화에 무브먼트를 제공하지 못한 원인은 국내 기업과 유사한 체제를 지닌 메이커계 SPA에 대한 학습보다 우월적 상품 구색력을 지닌 리테일계 SPA에 대한 학습이 주로 이루어 졌던 것으로 판단하는데 그 대상이 주로 빔즈, 쉽스, 유나이티드 애로우즈와 같은 기업들이었다.
위의 기업들이 쉽스에서 비롯되어 유사한 환경에서 유사한 포지션을 갖고 출발하였지만 최근에 들어서 기업간 차이가 벌어진 원인에 대해서 단순하게 진단 한다면 고객만족을 코어로 내세운 유나이티드 애로우즈가 다운 에이징된 포지션을 추구한 빔즈나 플레이스먼트를 코어로 내세운 쉽스에 비해 적응력이 뛰어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SPA 대표주자 월드사는 무엇이 다른가?
지금 시점에서 한국의 패션 업계에 가장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업을 선택한다면 단연 월드를 들 수 있다. 단지 십 여년간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월드사가 1994년 이후 걸어온 여정에 대한 학습이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월드는 기업의 비즈니스 컨셉을 SPARCS 이라고 설명한다. 단순하게 도식화로 표현 하였지만 그들의 기업에 대한 정확하고 간결한 설명이다. 그들은 SPA를 다이렉틀리 메네지드 스토어라고 자신의 스타일 대로 해석하고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체제하에서 관리본부라 할 수 있는 프로핏 센터와 핵심 상품기획자들과 점포 개발자들로 이루어진 전문가 그룹 그리고 전략적인 투자자들의 3극을 중심으로 하는 경영이 월드의 핵심역량 코어 컨피던스(core confidence)라고 볼 수 있다.
그림7.에서 보듯이 월드는 전반적인 일본의 불황 속에서도 지속적이고 평균 이상의 성장을 해왔다.
단 이익추세에서 2007년에 드러난 하향세는 2006년 월드사가 창업50주년을 맞이하여 5천여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발생한 본부관리비용의 증가로 인한 문제로 보인다.
월드사의 사업체계를 구조적으로 들여다 보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1세대 전략그룹(전통 도매업) : WRS를 근간으로 지역기반의 판매력을 갖춘 전문점 채널과 Share Up business. VMD력 개발이 핵심 역량. Cordier, Lui Chantant 등
2세대 전략그룹 : 백화점, 패션전문 빌딩, 역 빌딩을 중심으로 SPA Platform과 고감도 buying SPA 업태 중심. Indivi, Ville d’azur 등
3세대 전략그룹: 교외의 쇼핑센터, 패션전문점, 대형역사를 기반으로 Commodity Business 전개. HusHush, Index 등
디벨로핑 전략그룹 : 마켓과 패널의 변화에 맞추어 상시 고객지향형의 브랜드 및 업태를 개발 사업그룹에 이관. Album, Untitled Jewel 등
위에 나타난 실적을 보면(그림8. 월드사 주요 브랜드의 2007 실적) 월드사 안에서 각 전략 그룹간에 그들의 전략적 브랜드 포토폴리오 매니지먼트를 엿볼 수 있는데 크게 판단해서 다음과 같은 그림으로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브랜드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는 프로세스를 취하고 있지만 기본이 되는 프로세스는 위의 그림 10.과 같다. 십수년간의 SPA경험 속에서 월드가 만들어 낸 경쟁력을 압축 한다면 다음과 같다.
초기 전략의 일관 드라이브 - SPARCS
QR을 한 단계 발전시킨 APS 예측 시스템
정확한 SKU(Stock Keeping Unit)의 산출
착수 1개월 후 투입되는 QR 상품군
시즌에 임박한 기획과 원 부자재 조달.
전략제품은 임 가공비 고려 생산 결정. 평균 M/U배제
기중(期中) 기획을 포함한 공정별 다단계 의사결정 체제.
SKU 단위에 의한 POS분석으로 상품보충 적기 수행
다양한 전술적 수단의 지속적 강구 WRS , B-Com. F-Com..etc
간단하게 검토해 본 사항이지만 월드나 파이브폭스사와 같은 기업을 중심으로 지난 15년간 소위 패션지도를 바꾸어 놓는 지역밀착형 산업으로의 전환 노력이나 「갭」으로부터 시작해서 「자라」, 최근에 일본 10대뉴스로 까지 선정된 「H&M」의 상륙에 이르기까지 끊임 없이 진행 되어온 거인의 도전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기 방어를 해왔는지, 3사 비즈니스라는 전통적 틀을 깨어내고 일본형 SPA라는 새 패러다임을 통해서 생존의 틀을 만들어 내고, 전형적이고 규범적인 틀에서만 성장해온 일본 패션산업이 백 스트리트로 들어가서 ‘우라하라주쿠’에서 ‘언더커버’ 같은 새로운 형태의 패션 인재들을 불러들여 시장에 새로움을 불어넣는 계기 등 많은 노력 속에서 최근 일본 패션의 부활이라는 성과를 얻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이웃의 경험을 토대로 우리도 우리 앞에 닥칠 상황에 대해서 충분히 준비하고 대응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Comme Ca」 시리즈나 「Peyton Place」 같은 브랜드로 잘 알려진 파이브 폭스같은 기업은 이미 SPA단계를 넘어서 올해를 SPA 탈각(脫脚)의 해로 정하고 새로운 인재 초빙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들은 이미 다른 패러다임을 넘보고 있는 것이다.
2003년을 기점으로 쇠퇴기에 돌입했다고 보는 국내 패션 산업이 쇠퇴기에 보여 준 현실은 실제로 세계화 흐름 속에서 경쟁 패권적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채 지배, 흡수, 합병이라는 제로섬 사회의 보편적 논리대로 흘러 왔다. 최근 몇 년간 부침해 온 수많은 브랜드들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최근 있었던 여성복의 대표주자였던 오브제의 M&A 같은 뉴스들이 이러한 현실을 설명하는 적절한 증명 중의 하나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현재의 한국의 패션산업은 지금의 패러다임 하에서는 더 이상의 확대 재생산 구조에 돌입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우리에게 앞으로 다가올 변화의 모습은 과거 우리가 30년간 경험한 그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 이제는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기다릴 것인가? 나아가 마중할 것인가? 아니면 부르러 갈 것인가?
동시대에 주어진 기업의 선택이 다음 세대 내내 차이를 결정할 시점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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